Anillo Roto: Este matrimonio fracasará de todos modos 371
El río fluye hacia el mar, pero no logra llenarlo (37)
그날 저녁, 카셀 에스칼란테 데 에스포사가 전사했다는 비보가 긴급 발행된 멘도사 주보로 멘도사 전역에 전해졌다.
애초부터 노리에가 대령이 내릴 수 있는 독단의 한계는 에스칼란테에 카셀의 부고를 알리는 것이었으리라. 세상이 아니라. 그리고 황실이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이미 죽었다는 카셀 에스칼란테를 결단코 살려두는 것이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가 죽고 없는 오르테가 해군이 귀환하는 순간까지도, 세상에는 그가 살아있는 척했겠지.
물론 에스칼란테에게도 숨길 수 있는 최대한 숨길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녀는 황제를 거치기도 전에 에스칼란테 공작에게 곧이곧대로 해군의 전사 통지가 날아들었다는 사실을 황제가 알게 된 시점이, 임시 발행된 주보를 받아든 멘도사 시민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그놈은 하필이면 이렇게 곤란할 때 뒈지기까지 할 게 무어냐’고 괴로워하다, ‘에스칼란테도 지금 이 사실을 안다 하더냐?’ 하고 슬쩍 물어볼 정신머리나마 있었다면 알기는 했겠지.
그러나 약간만 곤경으로 내몰려도 저밖에 생각 못하는 성미로, 그 충격에 에스칼란테가 알든 말든 떠올릴 새나 있었으랴. ‘안다 해도 제 아들 죽은 것이 무어 좋은 일이라고 당장 떠벌리겠어?’ 기껏해야 그렇게 스치듯 생각하고 흘려버릴 것이 명백한 위인이다. 급한 불이랍시고 엄중한 입단속은 해군에나 시키기 바빴을 테고, 무엇보다 사실상 수도의 온갖 병력을 끌어모아 궁정에 두르고 자길 보호하느라 저 스스로를 고립시킨 행태였으니 앎도 통제도 느릴 수밖에.
그런 경우 보호와 고립은 동의어다. 누구나 옷을 두껍게 입으면 움직임이 둔해지듯이.
그럼에도 손쉬운 판단의 저변에는 황태자의 모후인 카예타나의 이름에 여전히 에스포사가 들어간다는 사실과, 황태자가 이미 실각했다는 현실 파악이 나란히 가미되어 있을 것이다. 궁정 안에서 잔뜩 내몰려 생각을 여러 번 할 수 없게 된 것도 한몫하겠고.
숙부가 조카를 저버릴 순 있지. 그러나 이미 실각당한 마당에, 하나뿐인 누이의 하나뿐인 아들이 죽기까지 바라려고…. 그렇지. 궁정 앞까지 들이닥친 시위대가 날이 갈수록 덩치를 불려가는데, 이 판국에 ‘카셀 에스칼란테가 죽었다’는 건 황태자를 절벽으로 몰아가는 것과 같았다. 이네스가 입매를 슬쩍 비틀었다.
물론 후안의 성정이라면 끝의 끝까지 바라지는 않을 수 있다. 그는 아들이 끝내 전사하고 만 불행을, 바로 그런 기회만 기다렸다는 듯이 떠벌릴 품위 없는 사내도 못 된다.
하지만 그들은 간과한 것이 있다. 그 곁에 서서 오스카르의 끝의 끝까지 기꺼이 바라 마지않을 다른 식솔의 문제다.
이를테면 후안 에스칼란테의 하나뿐인 며느리같이.
이네스는 엘꼬르떼에서 제 남편이 악명 높은 대영주 오를란도를 죽였으나 끝내 그의 더러운 술수에 휘말려 깊은 바다로 추락하고야 말았노라고, 그가 그리 실종되고 시신은 끝내 찾지도 못했노라고 한껏 절망에 젖어 고해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더는 흘릴 눈물도 없는 것처럼 보였고, 횡설수설하는 말은 제 혓바닥을 놀려 처음으로 내뱉는 이야기라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카셀이 죽었다.’ 그리 말하는 것만으로 목소리가 저절로 떨려 나왔다. 꾸며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 한 마디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비통하게 숨을 헐떡이는 군인의 아내.
그녀는 스스로를 좋은 소재 따위로 취급하며 가만히 그들에게 제 비참한 모습을 내보였다. 그저 ‘죽었다고만’ 하기에는, 단지 오르테가를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했다는 단편만으로는 부족하다. 카셀의 죽음은 위대하되 그 바닥까지 처참해야 했다. 모두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원망할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토씨 하나 그르치지 않고 제가 바라는 말들을 이들이 쓰게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니 이 또한 가증스러운 짓이지. 오르테가 국민들이 제 남편을 얼마나 사랑해주었는지 알기에 슬픔을 이기고 나온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으면 한다고….
그녀는 그렇게 엘꼬르떼를 비틀거리며 걸어 나와 다음으로 발레스테나 공작 관저를 향했다. 레오넬에게 사위의 부고를 전하고, 오늘 당장 군중 사이에 심을 몰이꾼들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뻔뻔하게도 했다. 딱히 무엇을 주도할 필요도 없이, 그저 여기저기 미친놈들에게 붙어 주변의 멀쩡한 이도 미치게 만들 바람잡이가 필요하다고. 기가 막혀 하는 아버지의 낯에도 그저 건조한 표정을 한 채 다른 말 없이 발레스테나 가를 나온 이네스가 이윽고 에스칼란테 공작 관저로 돌아왔다.
후안과 이사벨라에게는 제멋대로 군 것에 대한 용서를 빌었고, 당신들이 장자의 전사 통지를 곱씹을 새도 없이 그것을 이용해버린 자신은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그들이 용서하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증스럽게 그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정말로 용서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하지만 저는, 제 남편이 결코 죽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죽음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그는 죽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저는 알 수 있어요……. 그 말에 후안이 어떤 눈으로 저를 보았는지, 이사벨라가 어떤 얼굴로 울었는지 그녀는 하나같이 기억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미친 것을 보듯, 오죽하였으면 현실을 부정할까 하여 동정하듯…. 레오넬도 엇비슷한 그녀의 말에, 딱 저들과 엇비슷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조금 더 인간미가 없다는 점만 제하면.
그 아비에 그 자식인 법이었으므로, 이네스 또한 제 아비처럼 짐짓 멀쩡한 낯을 하고서 이사벨라의 가정부가 주방에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평소와 같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 카셀은 죽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식음을 전폐할 까닭이 없었다.
후안과 이사벨라, 미구엘이 오로지 저를 향한 동정과 연민으로 식탁에 마주 앉아 준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저를 둘러싼 세상이 자신을 믿지 않을수록 확신은 도리어 강해졌다.
카셀은 죽지 않았어. 사라지지 않았어. 마치 그가 죽었기에 이 순간 그들이 불행하다는 표정 따위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네스는 단지 저를 둘러싼 시간이 적당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마치 그녀의 그런 꼴이 더 불길하다는 양 후아나와 라울이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자신을 감시하는 동안에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급히 에스칼란테 공작 관저에 당도한 루시아노가 저를 껴안고 홧김에 스스로를 해치지는 않았는지 몸 이곳저곳을 살피는 동안에도…. 그녀는 온통, 카셀만을 생각했다.
네가 어디를 얼마나 표류하다, 지금쯤 어디에 다다랐을지. 어쩌면 이미 구조되어 사자를 보냈는데 그 사자의 뱃길이 순탄치 못했던 것일지도…. 늦은 밤, 그녀는 창가에 카셀이 놓아준 작은 책상에 앉아 그의 편지 꾸러미를 톡톡 두드리며 어두운 하늘을 보았다.
그러다 문득, 먼 함성 소리를 최초로 인지했다.
—…후아나, 들려?
—무엇이요?
—저 소리.
—무슨… 아. 아, 저게 무슨 소리람…….
후아나가 아연실색해 창밖까지 몸을 기울였다가, 이네스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물었다.
—나가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고 올까요?
—아니. 괜찮으니 옆에 있어. 기다리다 나중에 깜짝 놀라고 싶은걸.
이네스의 농담처럼 가벼운 대답에 후아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평온하기만 한 표정으로 편지를 묶은 끈을 매만지다, 아까 내던지다시피 했던 자수틀을 도로 쥐었다. ‘카셀 에스칼란테’. 밤이 더 깊기 전, 그렇게 그의 이름을 절반도 넘게 완성하기도 했다. 아까와는 판이한 속도였다.
돌아가며 만류하는 말에도 불구하고, 이네스는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카셀 에스칼란테 데 에스포사’를 다 해결하고, 제 짧은 이름만 겨우 수놓은 이네스가 더는 흥미가 없는 양 성서를 펼쳤다. 푸르스름 사방으로부터 밝아오는 하늘이, 어른거리는 촛불의 엷은 빛에 겹쳐들었다.
저 멀리서, 함성이 더욱 커졌다.
—이네스 님!
이윽고 라울이 황망하게 그녀의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뛰어들어왔다. 테이블에 엎드려 졸고 있던 후아나가 깜짝 놀란 나머지 덩달아 일어났다.
—이네스 님, 방금 전, 메르세데스 거리에서….
라울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되, 그것 때문에 차마 말을 더 하지 못하는 건 아닌 듯 보였다. 이네스가 침착하게 제 시종에게 말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도무지 말을 고를 도리가 없는 것처럼, 그저 당황스러운 얼굴 그대로 말했다.
—황실에서 황태자 전하를 시종으로 위장시켜 다른 시종들과 메르세데스 거리를 통해 피신시키던 도중에, 그만 군중들에 그 사실이 발각되어 전부 몰려든 통에…… 서거하셨답니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을 뿐인데 결론은 죽었다는 것이다. 이네스가 ‘서거’라는 단어 따윈 듣지 못한 듯 평온한 낯으로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더 이었다.
—그쪽에, 멘도사 동부 델레온에서 외성을 뚫고 들어온 농민들이 대거 있었다 하는데… 누군가는 전하께서 그들에게 밀려 넘어져 지나가는 발 아래 깔리고 밟혀 죽었다 하고, 누군가는 들고 있던 곡괭이와 갈퀴로 무작정 황태자 전하를 찍어내렸다고도 합니다…. 위장해 빠져나가는 도중이라 호위는 변변치 못했고, 함께 있던 시종들은 군중들에게 맞다 도망쳤다는군요.
—그럼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
—확실한 것은 서거뿐입니다. 다만 시신이 본래 형체를 알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는데, 얼굴을 반 정도 알아볼 수 있어 근위병들이 신분을 확인하고 그 시신을 수습중이라는군요.
—사지는 멀쩡히 붙어있고?
—…시신의 일부는 이미 소실되었답니다. 폭도들이 그 일부를 상징물로 갈취해 산 탈라리아 가도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폐하께서 가만히 계실 수 없겠구나.
그러나 별 도리도 없겠지. 어쨌거나 잠깐은 아들을 잃고 비참한 기분을 곱씹게 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절박함도 필요하겠지. 이네스가 가만히 시선을 돌려 성서의 펼쳐진 면을 응시했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Psa 37:10) For yet a little while, and the wicked {shall} not {be}: yea, thou shalt diligently consider his place, and it {shall} not {be}.
그녀가 성서를 덮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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